에덴동산은 하나님 나라를 상징한다.

 

에덴동산은 하나님 나라를 상징한다.

 

 

1. 동방의 에덴은 성전의 개념

 

성전은 하늘의 식양대로 지으셨다. 그래서 성전은 바로 하나님 나라를 상징하는 것이다. 성전은 하나님이 죄인을 대신하는 중재자 대제사장과 만나는 곳이다. 중재자 대제사장은 그리스도로서 여기서는 첫사람을 의미한다.

창세기 28절에서『와잍타(창설하시고) 야훼 엘로힘 간(동산을) 베에덴(에덴에) 미케뎀(동방의)』동방의 에덴에서, 동방이라는 단어는 미케뎀(מִקֶּ֑דֶם)이다. (מִ)는 장소를 나타내기도 하고 ~으로부터 라는 전치사 역할도 한다. 여기는 전치사이다. 즉 동방으로부터 라는 번역이 된다.

개역개정에는 동방의 에덴이라고 번역했는데, 창세기 416절에서 『가인이 여호와 앞을 떠나서 에덴 동쪽 놋 땅에 거주하더니』와 상충된다. 가인은 에덴의 동쪽으로 쫒겨나고, 28절은 동쪽의 에덴이라고 표현하므로 둘의 관계는 성립이 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에덴은 동쪽으로부터 분리되어 나온 에덴이라는 것이다. 에덴은 서쪽에 있는 것이다. 놋은 방랑하다 유리하다 라는 의미로서 동쪽은 그런 의미를 갖는다. 그래서 동쪽은 구원이 필요한 곳이라는 개념이 강하다. 성막의 그림이다. 성막의 문도 동쪽으로 나와있다. 성막의 서쪽에는 지성소가 배치되어 있는 것이다.

창세기 28절에서『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니라』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그 첫사람을 동방의 에덴에 두었는데, 그가 바로 대제사장인 그리스도라는 말이다. 골로새서 1 15절에서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시니」그리스도는 첫사람이면서, 마지막 사람이신 것이다. 이는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예정하시는 것을 말하고 있다.

그래서 성경은 첫사람으로부터 마지막 사람으로 이어지는 이야기를 통해서 하나님 나라에서의 일과 세상의 일을 대조하면서 설명을 해준다. 동방의 에덴에는 하나님과 사탄과 아담과 하와가 있었으며, 생명나무와 선악지식 나무도 소개된다. 그리고 하와가 하나님처럼 되고 싶어서 선악지식 나무의 열매를 먹고, 동방의 에덴으로부터 쫒겨나가게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와 그리스도의 예정과는 인과관계가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예정하는 것은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함인데, 동방의 에덴에 있던 아담과 하와가 범죄하므로, 그들의 원죄로 인해서 세상에 살고있는 모든 사람들이 죄인이 되었으며, 그래서 하나님이 스스로 그리스도가 되어 그들을 구원한다는 말은 논리적이지 못한 것이다.

동방의 에덴을 세상에 있는 성전으로 보는 시각에서 다 나아가 하나님 나라로 확장시키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에서 일어난 사건으로 보는 것이다. 왜냐하면 성경에는 두 곳에서 천사들의 범죄를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다서 16절과 베드로후서 24절의 말씀이다.

창세기 29절에서『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 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 창세기 29절을 다시 번역하면,『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모든 나무를 자라게 하시니, 그것은 정원가운데, 기쁘고, 양식을 위해 보기에 가치있고, 생명이 있는 나무이다. 그리고 선악 지식나무.

하나님이 지으신 나무는 기쁨이 있고, 양식을 위해 보기에 가치있고, 생명이 있는 나무이다. 그런데 선악지식 나무가 갑자기 등장한다. 정체불명의 독버섯과 같은 나무가 나타난 것이다. 하나님이 만드신 것이 아니라 어디선가 온 것이다.

선악지식 나무의 정체를 알기 위해서는 마태복음 1324-25절을 보면 알 수 있다. 가라지가 바로 선악지식 나무에 해당된다.

마태복음 1324-25절에서『예수께서 그들 앞에 또 비유를 들어 이르시되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으니 사람들이 잘 때에 그 원수가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더니.』좋은 씨는 생명나무가 된다. 그러나 가라지는 선악지식 나무이다. 누가 가라지를 심었는가? 원수가 심었다는데, 원수는 누구인가? 바로 악한 천사들이라는 것이다.

이제 다시 동방의 에덴에 있는 첫사람을 상기시킨다.

창세기 2 21-23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나팔)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아담이 이르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부르리라 하니라

와야펠(ַיַּפֵּל֩  기본형은 나팔)은 히필동사(사역형)으로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눕게 했다는 것이다. 나팔은 죽다 라는 의미도 있으므로 죽음과도 연관이 있다. 타르데마(7290에서 유래)를 보면 기본어근;‘기절시키다’, 즉 ‘정신을 잃게 하다’(잠이나 죽음으로):-깊은 잠에 빠지다, 깊이 잠들다, 죽은듯이 잠들다라고 되어있다.

첫사람 아담은 마지막 아담의 표상이다. 아담이 와야펠하고 타르데마한 것은 십자가에서 죽는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 첫사람이 죽으므로, 남자 아담과 여자 하와가 만들어졌다. 여기에서 혼동이 일어나는 이유는 첫사람과 남자 아담을 동일하게 바라보기 때문이다. 첫사람은 그리스도이지만, 남자 아담은 범죄한 자의 모형인 것이다. 첫사람은 죽고, 남자와 여자가 첫사람을 통하여 죄의 몸으로 창조된 것이다.

첫사람은 세상 사람들에게 죄의 몸을 주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난 그리스도, 마지막 아담은 죄의 몸에 대해서 죽고, 영의 몸(의의 몸)으로 살게 하기 위해 태어나신 그리스도인 것이다.

첫사람 아담으로부터 몸을 받은 모든 사람들은 각각 영적인 원죄(하나님처럼 되고 싶었던 죄)를 가지고 육체 속으로 들어오게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백성들의 죄를 대신할 동물을 죽여서 그 피를 전가받아 죄인의 대표로 지성소에 들어가는 대제사장인 것이다. 남자 아담과 여자 하와는 하나님께 죄를 짓고, 영이 하나님을 떠나, 육체와 결합되어 이 세상에 태어난 모든 사람들을 의미한다. 따라서 첫사람의 범죄와 같은 죄가 아닌 것이다.

남자 아담과 여자 하와는 하나님 나라에서 범죄한 천사들을 상징한다. 그들이 어떻게 죄를 지었는가? 바로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마음에 선악과를 먹었다. 독버섯과 같은 선악지식 나무에서 생겨난 선악과를 먹었다는 말은 이미 하나님을 대적하는 그 무엇인가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것이 무엇인가? 선악지식 나무의 정체를 알아야만 하는 것이다.

현대의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인공지능(A.I.: Artificial Intelligence)과 날마다 접한다. 인공지능은 이 세상 사람들의 모든 지식과 경험을 다 합하여 놓은 빅데이터를 의미한다. 사람들에게 해결사가 되는 것이다. A.I.는 점차 발전하고, 스스로 결정하는데 까지 나아갈 것이다. 그래서 언젠가 이것이 인간의 모든 것을 해결해 주며, 인간은 그것을 의지 하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는 상태가 될 것이다. 심지어 사람들은 인공지능을 뇌에 심어서 스스로 생각하는 것을 포기하려고 할지 모른다. 인공지능이 인간에게 생각할 여유를 주지 않으므로, 그래서 종국적으로, 사람들은 인공지능이 지배하는 세계에 살아가게 된다.

인간은 인공지능의 노예가 되는 것이다. 결국 인간에게 인공지능은 악이 된다. 악은 해를 끼치는 존재이다. 인공지능은 인간에게 죄가 된다. 이것은 가상 시나리오이지만, 인공지능은 결국 인간을 컴퓨터처럼, 로봇처럼 기계화시키고, 형이상학적 인간의 가치를 멸하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은 원리를 하나님 나라에 적용시키면, 악한 천사들이 그들이 가지고 있는 능력과 지식과 생각을 결합하여 A.I.(Angel Intelligence)를 만든 것이다. 그들이 공유하는 이 A.I.는 그들에게 하나님이 없이도 얼마든지, 하나님처럼 될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에게는 죄라는 의미이다.

이렇게 인공지능을 도입하여 죄에 대해서 말하고자 하는 이유는 죄는 관념적인 것이 아니라, 실제적인 존재라는 말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신도들은 죄는 인공지능이다 라는 가정법으로 생각해서 접근해보기를 원한다. (A.I.)는 세상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에서 시작되었다. A.I.는 악한 천사들의 A.I.(Angel Intelligence)이다.

로마서 5 12절『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성경은 죄(A.I.)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다고 한다. 514절에서『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까지도 사망이 왕 노릇 하였나니 아담은 오실 자의 모형이라.』사망이 왕노릇한다고 했다. 사망 역시 관념적인 의미가 아니라, 실제적인 존재를 의미한다. 사망이 왕노릇한다는 말은 A.I.가 인간의 주인인 것처럼 인간에게 명령을 내리고 행동하게 하는 것이다.

선악지식 나무는 하나님이 만드신 것이 아니라, 악한 천사들이 만든 A.I.이다. 악한 천사의 영이 흙이라는 육체 속에 들어와 인간이 될 때, A.I도 함께 육체에 들어온 것이다. 이것을 마태복음에서 가라지의 비유로 등장하는 것이다.

 

2. 심령 속에 등장하는 가라지의 비유

마태복음 13 40-43절『그런즉 가라지를 거두어 불에 사르는 것 같이 세상 끝에도 그러하리라 인자가 그 천사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그 나라에서 모든 넘어지게 하는 것과 또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거두어 내어 풀무 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그 때에 의인들은 자기 아버지 나라에서 와 같이 빛나리라 귀 있는 자는 들으라』

가라지는 선악지식 나무(A.I.)에 해당되며, 여기에 작동되는 가짜 신도는 둘째 사망에 처해진다. 불에 사르는 것은 둘째 사망이 되는 것이다. 세상에서 살아있을 때, 이를 깨닫고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는 자는 이미 둘째 사망을 받았으나,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지 않는 자는 음부에 들어가 둘째 사망의 심판을 받게 된다.

창세기 2 16-17절에서『선악 지식나무』를 언급하는 이유는 이미 가라지가 정원에 심어졌다는 말을 나타낸다. 즉 신도의 심령 속에 가라지가 심어졌다는 말이다. 그래서 그 죄라는 열매(A.I.)를 먹지 말고,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으라고 말씀하신다. 즉 하나님 말씀에 반응하여 살아가라는 것이다. 하나님 말씀은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의미한다. A.I.에 반응하는 자는 예수와 함께 죽는 것을 알지 못한다. 예수와 함께 죽지 않으면, 율법 아래 있는 자이고, 선악지식 나무의 열매를 먹는 자이다. 부활 역시 현재적 부활을 믿지 않는 자도, 죄가 여전히 심령 속에 있는 것이다. A.I.가 계속 작동되는 것이다.

 

3. "선악의 지식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창세기 2 16-17절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정원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의 지식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죽고 죽으리라 하시니라』

선악 지식나무의 열매를 먹는다는 것은 자기가 선악을 판단하는 주체가 된다는 말로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마음에서 나온 것이다. 이 말은 하나님 나라에서 범죄한 천사의 이야기를 표현해 놓은 것이다.

유다서 1 6절『또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큰 날의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셨으며』, 베드로후서 2 4절『하나님이 범죄한 천사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고 지옥에 던져 어두운 구덩이에 두어 심판 때까지 지키게 하셨으며』

범죄한 천사들이 하나님처럼 되고 싶어서 탐욕을 가지므로, 하나님이 그들을 벌하신 것이다. 2 17절에서 범죄한 천사가 『선과 악의 지식나무의 열매』를 먹었다. 그들은 하나님처럼 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 열매는 죄라는 열매다. 하나님은 범죄한  천사를 세상의 흙속에 가두어 인간이 되개 했다. 하나님은 악한 천사를 인간이 되게 하여 가두었다. 그래서, 창세기 2 7절의『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생명체)이 되니라』라고 말을 한다.

비록 그들이 땅에 갇혀 사람이 되었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들이었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예정하셔서 그들을 구원하기로 한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이다. 

죄는 세상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에서 시작되었다. 로마서 5 12절『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한 사람은 첫사람 아담이다.『한 사람으로 말미암아』라고 번역되었는데,『한 사람을 통하여』라는 말이다. 첫사람 아담은 죄가 세상에 들어오는 통로인 것이다. 즉 통로라는 말은 죄가 통과하는 몸이라는 말이다. 그래서 죄의 몸이 죄의 통로이다. 로마서 6 6절에 나오는 『죄의 몸』은 헬라어로『토 소마 테스 하마르티아스』(τ σμα τς μαρτίας)라고 하는데, 죄덩어리의 몸이 아니라, 쓰레기를 담는 통과 같은 것으로 볼 수 있다. 죄를 물건으로 생각한다면, 죄를 담는 그릇 같은 것이다. 첫사람 아담이 그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첫사람은 그리스도이시다.

남자와 여자는 첫사람 아담으로 부터 죄의 몸을 이어받아  태어났고, 범죄한 천사가 지은 죄가 하늘로 부터 그들의 죄의 몸 속에 들어가는 것이다. 그리고 범죄한 천사의 영이 죄의 몸 속으로 들어오므로 후대의 사람(남자와 여자)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악한 천사의 영은 죄의 몸에 들어오므로 영적으로 죽어버린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이와 같이 죄와 죄의 몸(육적 몸)이 있다. 죄의 몸은 부모로부터 받고, 죄는 하늘 나라에서 범죄한 영과 함께 들어오는 것이다.

『선과 악의 지식나무』는 율법주의 나무로 자기가 주체가 되는 나무다. 사람들이 스스로 율법을 지켜 의를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한 나무인 것이다. “선과 악의 지식나무(율법)의 열매를 먹는다” 말에서, 율법의 열매는 죄다. 죄의 결과는 (희생제물의) 죽음이다. 율법은 하나님이 백성들에게 죄를 깨닫게 해 주는 것인데, 율법의 열매를 먹는 것은 죄를 먹는 것이다. "네가 먹는 날에는 죽고 죽으리라 하시니라" 두번 죽음을 상징한다. 물세례와 불세례를 표현한 것이다.

4.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으라

창세기 31-4절에서,『그런데 뱀은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 가장 간교하니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이르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열매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창세기 3 3-4절의 번역상의 오류가 심하다.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다시 번역을 해보면 다음과 같다. [(부정) 토켈루(먹을 것이다) 밈멘누(그것)]. 한글개역개정은 『로(부정)』를 명령형으로 번역했다. 그런데, 문장의 부정형이다. 만일 토켈루(미래형)의 부정형이면, 먹지 않게 될 것이다. 뒤의 문장도 만지지 않게 될 것이다라고 된다. 그러면 무슨 뜻인지 알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로』는 죽는 것에 연결되어야 하는 것이다.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죽지 않도록 먹게 될 것이고, 죽지 않도록 만지게 될 것이라,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죽지 않고 죽으리라.이는 장차 그리스도 안에서 부활생명의 열매를 먹으므로, 영이 죽지 않게 될 것이라는 표현이다. 부활생명의 열매를 먹으면 죽지 않고, 먹지 않으면 죽는다는 표현이다.

그래서, 아담과 하와는 부활생명 나무의 열매를 먹는 것이다. 이때 아담과 하와는 첫사람 아담으로 부터 분리된 후의 남자와 여자인 것이다.

하나님은 창세기 3 3-6절에서 동산 중앙의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으라고 말씀하신다. 3 5-6절에서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이 말은 그것(생명나무 열매)을 먹는 날에는 영적으로 눈이 밝아져서, “하나님같이 되는 잘못된 선”을 깨달은 줄 하나님이 아심이라는 말이다. 한글번역성경은 “하나님과 같이 선악을 알 줄”이라고 번역했는데, 선악이라는 말에서 악이라고 되어 있는 히브리어 와라(기본형은 라)는 형용사로서 선을 수식한다. 악의 선이라는 말이다. 잘못된 선을 의미한다. 하와가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마음이 잘못된 선이라는 말이다.

 

5. 부활은 원래대로 돌아가는 의미를 갖는다.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이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이라고 말씀을 한다. 부활이라는 말에 대해서, 육신의 입장에서 보면, 육이 부활한다고 믿게 되지만, 영의 입장에서 보면 원래 하늘의 생명인데, 흙에 잠시 갇혀 있다가 다시 하늘의 생명이 부활한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늘의 생명이므로, 육이 죽고, 하늘의 생명으로 부활한 것이다. 그런데도, 육이 부활했다고 주장한다면, 육의 눈으로 보기 때문이다.

누가복음 20 35-36절에서"저 세상과 및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함을 얻기에 합당히 여김을 받은 자들은 장가 가고 시집 가는 일이 없으며 그들은 다시 죽을 수도 없나니 이는 천사와 동등이요 부활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자녀임이라" 그리고, 마태복음 22 30"부활 때에는 장가도 아니 가고 시집도 아니 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라고 말을 한다. 천사는 영이다. 그래서 부활은 죽었던 영이 생명의 영으로 돌아간다는 말이다. 

사도바울은 부활의 몸을 영의 몸이라고 말한다. 고린도전서 1535-38절에서 『누가 묻기를 죽은 자들이 어떻게 다시 살아나며 어떠한 몸으로 오느냐 하리니 어리석은 자여 네가 뿌리는 씨가 죽지 않으면 살아나지 못하겠고 또 네가 뿌리는 것은 장래의 형체를 뿌리는 것이 아니요 다만 밀이나 다른 것의 알맹이 뿐이로되 하나님이 그 뜻대로 그에게 형체를 주시되 각 종자에게 그 형체를 주시느니라』

농부가 씨를 뿌리지만, 장래의 형체를 뿌린다는 것이다. 나중에 씨가 열매가 되리라고 생각하면서 씨를 뿌린다는 것이다. 씨껍질이 죽고(사라지고) 그 속에 있는 씨눈이 자라서 다른 형체로 바뀌는 것이다.

고린도전서 1542-44절『죽은 자의 부활도 그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엔 아프타르시야) 살아나며(에게이레타이)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소마 프뉴마티콘)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영의 몸도 있느니라』

엔 아프타르시야(ν φθορ)는 영생 안에서, 에게이레타이(γερεται)는 일어난다는 말이다. 영원한 생명 안에서 영이 일어나는 것이다. 한글 개역개정은 다시 살아난다 라고 번역하므로 마치 죽었던 육체가 다시 살아나는 것처럼 오인하게 한다. 신령한 몸이라고 번역된 소마 프뉴마티콘은 영의 몸이다. 부활은 육의 몸이 아니라 영의 몸이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고린도전서 1550『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하이마)과 육(사륵스)은 하나님 나라를 이어 받을 수 없고 또한 썩는 것은 썩지 아니하는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

요한복음 663절에서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

갈라디아서 220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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